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올해는 1900년, 한 해 중 가장 추운 날,
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폭설이라는 뉴스를 마지막으로
고아원의 유일한 라디오조차 먹통이 되어 버렸습니다.
우리를 돌보는 소수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은
눈이 더 쌓이기 전에 식량과 생필품을 구비하러
마을로 일찌감치 내려가셨어요.
이 곳, 에덴 고아원에 남은것은
마르코 신부님과 우리들 뿐입니다.
지루하고 무료하고 따분한 하루네요.
밖을 내다봐도, 고아원 내부로 눈을 돌려봐도
세상은 온통 눈이 따가울 만치 하얗습니다.
꼴에 성당이었다고 정교하게 조각된 제단은
흰 장미와 백합, 그리고 안개꽃으로 장식돼 있습니다.
한겨울에도 살아 피어난 흰 꽃이라니,
매년 보면서도 매번 아이러니하네요.
성가대석엔 슬슬 먼지가 허옇게 내려앉습니다.
이곳저곳을 철저히 관리하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
먹고 입을 것을 구하기 위해 며칠 자리를 비운 탓이지요.
신의 은총이라든가 뭐 성당의 대단한 역사라봐야
우리에게는 아득히 먼 이야기에 불과합니다. 그렇죠?
우리는 지금 당장 먹을 빵의 갯수가 더 중요합니다.
추위를 이겨낼 옷가지와 불썽사납게 그을린
벽난로에 던져 넣을 땔감도요.
그리고 오늘 밤 옆에서 잠들 아이의 발이
내 머리를 향하지 않게 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.


MajulaDark Souls II Soundtrack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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